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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 보는, ‘남의 집’ 이야기
연애부터 가정사, 이혼사를 담은 예능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대단하다. 연애사에서 시작된 ‘남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대중들은 왜 이토록 남들의 연애와 결혼, 이혼에 열광하는가.
<나는 솔로>, <환승연애>, <솔로지옥> 등의 연애사부터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살림남>으로 이어지는 결혼사, 그리고 <이혼숙려캠프>, <이제 혼자다>, <한 번쯤 이혼할 결심> 등의 남의 집 이혼사까지 요즘 방송은 남의 집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젊은 청춘들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오고 가는 연애 리얼리티를 시작으로 생성된 관심들은 이제 이혼에까지 이르러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폭발시킨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질수록 내용들은 점점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시청률 1%만 넘겨도 성공’이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이혼 예능들은 2~3%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혼 소송중인 전아나운서 최동석이 출연한 <이제 혼자다> 첫 방송은 4.5% 시청률을 넘기며 ‘대박’을 기록했다. 이혼 사유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나온 적이 없던 터라 ‘방송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을까’하는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모여든 결과다. 눈에 띄는 대단한 스타들이 출연하지 않고서도 ‘주제’만으로 이만한 결집력을 갖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좋은 결과를 내주는 이런 예능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진=SBS Plus 공식 유튜브
<나는 솔로>에서는 지정된 가명으로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이름마다 비공식이긴 하지만 특징이 있다. ‘넌 상철 캐릭터야’라는 말을 듣고도 ‘무슨 소리지?’ 갸웃거렸다면, 이름 별 특징을 살펴두시길.
영식 : 바른생활 사나이, 모범생
영호 : 분위기메이커, 막내 느낌
영철 : 상남자, 마초 스타일
광수 : 브레인 역할, 고학력 전문직
상철 : 포용력 있는, 부드러운 남자
정숙 : 연장자, 솔직하고 깐깐한 스타일
순자 : 막내, 마이웨이 스타일
영자 : 귀엽고 활발한 성격
옥순 : 외모, 분위기 강자
현숙 : 고스펙, 차도녀 스타일
연애, 이혼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방송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연애 리얼리티에서는 과감한 신체적 ‘터치’가 이뤄지고, 수위 높은 농담도 오간다. 이혼 예능은 더하다. 방송에선 ‘삐’처리가 되긴 하지만 막말이 오간다. 심한 경우 욕설이 담긴 입 모양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한다. ‘매운 맛’의 향연이다. 드라마가 아닌, 실제 부부가 보여주는 ‘리얼’한 모습에 사람들은 빠져들어간다. ‘방송을 위해 어느 정도의 연출이 있겠거니’하는 마음으로 보다가 적나라한 모습에 실제인지, 연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혼한 방송인은 시청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방송을 재개해야 했던 상황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상황에 어리둥절할 정도다. 방송인들 사이 ‘이혼을 해야 프로그램을 많이 할 수 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는 어느 개그맨의 말이 단순히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신발벗고 돌싱포맨>, <이제 혼자다>, <돌싱글즈> 등 ‘돌싱’이라는 타이틀이 있어야 고정출연과 MC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넘쳐난다.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언급해야 했던 ‘이혼 이야는 이제 깔깔대며 떠들 수 있는 ‘개그 소재’가 되었다.

TV조선 <이제 혼자다> 첫방송 예고편. 이혼 소송 진행 중인 전아나운서 최동석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TV조선 공식 유튜브 ‘TVCHOSUN STAR’
한 때 정신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비혼 장려 인물’로 대중들 사이 언급된 적이 있다.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금쪽같은내새끼>가 육아 공포(?)를 조장하고, <오은영리포트-결혼지옥>이 비혼을 조장한다는 여론에 의해서였다. 사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놓고 비혼 조장이냐, ‘공감’을 통한 위로의 방송이냐에 대한 왈가왈부는 계속 되고 있다.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가족 해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것을 놓고 보면, 전자의 의견도 맞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 쉬쉬하던 예전과는 시대적 상황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연간 9만 건이 넘는 이혼이 이뤄지고 있는 요즘, 혼자만이 겪는 아픔이 아닌 TV를 통해 공감하고, 위로 받는 부분도 충분히 있을 터. 개인사에 대해 금기시하거나 주홍글씨를 새기지 않게 된 것도 TV를 통해 예민한 주제들이 꾸준히 노출되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기에 그 섬세한 외줄타기를 지혜롭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청률에 죽고 사는 방송사라 할지라도, 가족에 대한 부분만큼은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오은영 박사가 실제 부부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MBC <오은영리포트-결혼지옥>
사진=MBC 공식 유튜브 ‘엠뚜루마뚜루’

심리상담센터 ‘마음의 방’ 대표를 맡고 있다. 상담심리 박사 수료 후 센터를 운영하며 상담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A.“우리는 실수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기 전 타인의 경험을 과도하게 간접학습하려 합니다. 이런 마음은 ‘관계’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연애나 이혼 프로그램을 보며 ’어떻게 하면 관계에 실패하지 않을까‘에 집중합니다. 프로그램에 소위 ’빌런‘이 나오면 화제성이 높은 이유도 단순히 강한 캐릭터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반면교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 저렇게 하면 사람들이 싫어하는구나. 우리는 ’알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정작 관계에서 중요한 건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시도를 실제로 하느냐인데 말이지요. 그 방법은 TV 속에 있지 않고, 바로 내 앞에 있는 실제 관계들에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