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ㅣ 골프

골퍼 박주영의
새로운 세계

독특한 패션으로 보이시한 매력을 뿜어내던 박주영이 엄마 골퍼가 되어 그린으로 돌아왔다.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았지만 여전히 그는 골프 선수 박주영으로 불리길 원한다. 그가 올봄 KLPGA투어 무대로 돌아온다. 가족과 팬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두르고.

스튜디오가 아기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촬영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인 아기는 다름 아닌 박주영 프로의 아들 하율이였다. 태명 ‘꽉꽉이’로 가끔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아기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결혼 전 쇼트 컷에 점프슈트를 입고 선머슴처럼 페어웨이를 활보하던 박주영 프로를 취재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에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카메라 앞에서는 물론이고 아이를 돌보며(돌본다기보다는 같이 논다는 표현이 맞겠다) 온몸을 던져 놀아주는 모습이 말이다. 지난해 9월 출산을 한 후 잠시 휴식을 가졌던 박주영 프로는 이번 시즌 투어에 복귀한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그에게 복귀 소감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좀 착잡하다. 오래 쉬었고,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출산 이후 생각보다 컨디션이 빨리 돌아오지 않는다. 육아를 하면서 훈련을 병행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정말 세상의 엄마는 다 위대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요즘이다.”

임산부 골퍼, 그린에 서다

2021년 12월 결혼한 그는 곧바로 임신 사실을 공개하고, 임신 6개월의 몸으로 2022년 두산 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 출전해 조별 리그 3연승을 거두며 16강에 안착했다. 2022 시즌에서 그는 앞서 열린 6개 대회를 포함해 시즌 7개 대회에 개근하며 꾸준함을 과시했고, 교촌허니레이디스오픈에서는 톱 10에 진입해 공동 6위로 경기를 마쳤다. 제법 불룩한 배를 안고 스윙하는 모습은 KLPGA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몰랐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그때 임신한 몸에 대해 좀 무지했다. 골반이 틀어지고 탈장이 됐는지도 모른 채 플레이를 했다. 워낙 골프를 좋아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승부를 보기 위해 세운 전략이 다행히 잘 맞아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 조별 리그 3연승을 이룰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드라이버 거리가 줄어 스트레스를 받았고, 무게중심이 뒤로 빠지는 아이언 샷을 바로잡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뒤꿈치를 들고 스윙을 하기도 했다.

LPGA와 KLPGA의 차이

최근 박인비 선수도 임신 소식을 전한 바 있고, 미국LPGA투어에서는 이른바 ‘맘 골퍼’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LPGA투어 통산 13승을 올린 스테이시 루이스(38세)는 2018년 10월 딸을 낳고 3개월 만에 복귀했고, 캐트리오나 매슈(54세, 영국)는 2009년 둘째 딸 출산 후 11주 만에 불혹의 나이로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해 ‘슈퍼 맘’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미셸 위(34세), 줄리 잉크스터(63세) 등도 대표적인 엄마 골퍼다. 두 딸을 둔 잉크스터는 개인 통산 메이저 대회 7승 가운데 4승을 출산 후에 기록하기도 했다.

브리타니 린시컴의 스폰서 기업인 CME와 다이아몬드리조트 측은 그가 출산·육아로 쉬어도 후원금을 그대로 지급하겠다는 사실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운동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우리나라 선수들에겐 그저 부러운 현실인 따름이다.

반면 KLPGA투어는 ‘엄마 골퍼’가 드물다. 짧은 선수 생활과 임신 이후 육아 문제로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안시현과 홍진주가 육아와 골프를 병행했지만 지금은 클럽를 놓은 상태고, 현재는 쌍둥이 엄마 안선주가 유일한 상태다. 왜 그럴까? 육아와 골프를 병행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다. 시즌이 시작되면 거의 매주 전국 각지로 ‘출장’을 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 프로암 대회와 공식 연습에 각각 하루를 투자해야 한다. 온전하게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월요일 하루뿐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박주영 프로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는 게 속상할 때가 가끔 있다. 협회 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LPGA의 경우 돌봄 서비스와 보모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들었다.”

KLPGA투어 선수들이 대부분 20대 초중반이고 30대만 되어도 어김없이 ‘노장 선수’란 타이틀이 붙는 현실에서, 투어 활동과 육아를 병행하는 ‘맘 골퍼’를 지원하는 정책이 많아져야 앞으로 엄마 골퍼가 설 자리가 많아질 것이란 것이 그의 바람이다.

여전히 건재한 박주영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무관의 강자’로, ‘스테디 레전드’로 KLPGA투어에서 30번이나 톱 10에 이름을 올린 그가 아니던가. 운동선수의 운동선수로 불리며 체육계 집안(언니는 LPGA 박희영 프로, 아버지는 체육학과 교수)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타고난 경기 감각을 가지고 있는 박주영이다. 아쉽게도 우승은 없지만 그동안 늘 상위권에 랭크되었던 박주영은 이번 시즌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 위해 태국 전지훈련에 참여했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샷 점검, 점심 후 쇼트 게임 연습, 마무리 저녁 체력 훈련까지 만만치 않은 스케줄이지만,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며 힘을 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과 아기와 멀리 떨어졌다. 무척 보고 싶지만 흔쾌히 외조를 해주는 남편과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샷을 가다듬고 있다. 쉴 틈 없이 그립을 잡다 보니 손이 얼얼할 정도다”라고 말하는 그는 훈련에 빠르게 적응하며 실력을 쌓았다.

4월 첫째 주 제주에서 열리는 롯데렌탈여자오픈에 첫 출사표를 던진 그는 8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하는 KLPGA투어에서 ‘엄마 골퍼’로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

“‘엄마 골퍼’란 타이틀에만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엄마로만 기억되는 건 싫다. 프로 골퍼 박주영으로 당당하게 팬들과 만나고 싶다.” 두려움과 기대가 함께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박주영. 처음 가보는 낯선 길 위에 선 그의 새로운 스토리가 기대된다.

엄윤정 기자
진행 김수진
사진 정택
헤어&메이크업 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