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ㅣ 골프

[인터뷰]
Stay Humble
Stay Hungry

투포환 선수였던 이경훈은 처음 골프채를 잡을 때부터 PGA 무대가 목표였다. PGA투어 6년 차, 투어 2승을 거머쥐었지만 그는 아직 목마르다. 원대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꾸린 후 안정감을 찾은 그는 사랑스런 딸 유나에게 멋진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제 꿈이요? 세계 1위 골프 선수가 되고 싶어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바이런넬슨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PGA투어 2연패를 달성한 이경훈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평상시와 달리 깔끔한 슈트를 입고 카리스마 넘치는 차가운 모습을 선보였지만 언뜻언뜻 묻어나오는 ‘순둥순둥’한 이미지를 숨길 수는 없었다. “눈꼬리가 좀 처져서 평상시엔 다들 순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투어 중에 얼굴이 그을리고 골프복을 입으면 평소보다 좀 쎄 보인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한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고국에 돌아와 휴식을 취해서인지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퍼터 바꾸고 대회 2연패

지난해 5월 AT&T바이런넬슨에서 첫 승을 기록하고, 올해 같은 대회에서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했으니 우승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조던 스피스에게 뒤진 상태로 출발해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12번 홀 이글을 잡으면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원래 골프 장비를 잘 바꾸는 편이 아닌데 작년엔 블레이드 퍼터로 우승했고, 이번엔 일자 퍼터에서 투 볼 퍼터로 바꿔 우승했다. 퍼팅이 생각보다 잘 들어가더라. AT&T바이런넬슨 대회와는 궁합이 좋은 것 같다.” 1994년 창설된 이 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한 선수는 이경훈을 포함해 ‘전설의 골퍼’ 샘 스니드, 잭 니클라우스, 톰 왓슨, 이렇게 4명뿐이다.

프레지던츠컵 기억에 남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참가해 남자 골프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후 2012년 일본프로골프투어 나가시마시게오인비테이셔널 세가사미컵 등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곧바로 PGA투어에 진출, 골프 엘리트 코스를 거친 이경훈은 올해로 PGA투어 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듯싶다.

“처음엔 물론 쉽지 않았다. 이동이며 음식이며 지난한 훈련까지…. 그렇지만 가족이 생기고 우승이란 성과를 얻으면서 이젠 PGA투어에서의 삶에 제대로 정착하는 것 같다. 특히 임성재, 김주형 등 한국 후배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더 힘을 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경훈에겐 올해 출전한 프레지던츠컵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고. 미국 팀과 인터내셔널 팀의 남자 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에 임성재와 김주형이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냈고, 이경훈은 김시우와 함께 추천 선수 명단에 올라 출전하게 됐다. “한국 선수 4명이 한꺼번에 출전했다. 최경주 선배가 부단장까지 맡았으니 5명의 한국 선수가 프레지던츠컵에서 활약한 셈이다. 너무 뿌듯했다. 서로 친하게 지내며 거리낌 없이 조언을 주고받으니 긍정의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았다.”

한국 선수뿐만 아니라 팀원인 애덤 스콧이나 마쓰야마 히데키의 경우 쇼트 게임 등 연습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로리 매킬로이와의 일화

그렇다면 PGA투어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일까? 더CJ컵 마지막 라운드에서 챔피언 조로 같이 출발했던 로리 매킬로이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봤는데 바로 답이 나왔다. “매킬로이를 보면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장타가 나오는지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같은 남자로서 멋있다는 느낌을 받는 선수다. 왜 많은 선수들이 매킬로이를 이상적인 선수로 꼽는지 이해가 된다.”

세상엔 정말 훌륭한 골프 선수가 많다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이경훈. 그는 앞으로 타이거 우즈와 라운드를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건 힘들 것 같고, 내년 시즌엔 챔피언 조에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챔피언 조에 속해 있으면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된다고.

골프는 아직도 매력적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이경훈은 ‘세계 1위’가 목표였다. 투어 우승과 지금의 순위가 그에겐 만족스럽지 않다. “골프는 변수가 많은 스포츠다. 그래서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어느 날은 정말 꼴도 보기 싫다가도, 다시 클럽을 잡으면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골프를 아주 좋아하는 선수다.” 지금도 집과 연습장을 오가는 단조로운 삶이지만 그는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하다고 전했다.

계획적이기보다는 흥미로운 것에 끌리는 내성적 성격의 이경훈은 요즘 명상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시간 날 때마다 고요한 상태로 명상을 즐기다 보면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고, 명상이 골프 멘털을 강화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고마운 아내

지금 그의 골프 여정을 풍요롭게 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가족이다. 2017년 유주연 씨와 혼인 신고를 먼저 한 그는 이듬해 부인과 동행한 첫 시즌에서 미국 진출 3년 만에 1부 승격의 기쁨을 맛봤다. 지난해 5월 우승 당시엔 만삭의 아내와 함께 우승 사진을 찍었고, 올해 우승은 딸 유나와 함께했다.

“아내와 성격이 정반대다. 외향적인 성격의 아내는 늘 내게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우승 직후 아내가 ‘너무 고생이 많았다. 내가 당신의 골프 인생에 고속도로가 되어주진 못하더라도 작은 자갈의 역할은 꼭 하겠다’며 진심 어리게 말해줘서 무척 고마웠다.”

딸이 태어난 이후 삶이 많이 달라졌다는 그. 가족과 함께 찾은 한국에서의 달콤한 휴식을 뒤로 하고 또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PGA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담담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제 앞에 놓인 벽을 넘어볼 생각이다. 포기하지 않고 80번의 두드림 끝에 PGA투어 첫 승을 기록했다. 가족이 있어 더욱 든든하고 새로운 시즌이 기대된다.”

엄윤정, 서연수 기자
사진 최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