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는 측정하기 힘든 무게가 있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 시간의 세례를 받으면, 불멸의 클래식이 된다. 명품도 마찬가지. 오랜 기간 월등한 가치를 인정받은 브랜드는 명품의 반열에 오른다. 최근 명품과 시간, 그 불가분의 관계는 더욱 심화·확장되는 모습이다.
라이프스타일 ㅣ 트렌드
[브랜드 다이제스트]
‘백년명품’의 가치,
그리고 새로운 도전
오래된 맛집이나 노포는 으레 훈장을 달고 있다. ‘Since’나 ‘원조’ 등이 그것인데, 그런 수사 에 부담을 느끼는 곳이라도, 허름한 간판과 옛날 사진 하나쯤은 붙어있기 마련이다. 이는 ‘오랜 시간’ 맛과 품질을 지켜왔고 소비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았다는 일종의 보증서다.
패션에서도 시간의 의미는 각별하다. 시간은 품질의 우수성을 검증하며 소비자의 로열티(충성도)를 높이고 특별한 이야기를 만든다.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하이엔드 브랜드 에르메스의 설립 시기는 1837년. 무려 200년 가까운 역사와 전통을 이어 왔다. 다른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샤넬도 각각 1854년과 1910년 설립됐다. 이들 브랜드는 모두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명품의 특성상 시간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시간의 중요성은 소비자와 브랜드의 입장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소비자가 오래 쓸 수 있다는 것은 품질의 우수성을 대변한다. 둘째, 브랜드의 오랜 역사는 지속적인 소비자의 사랑을 의미한다.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품질이 우수하더라도 브랜드 자체가 생존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팬데믹과 함께 글로벌 명품시장이 위축되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명품 브랜드도 지속가능경영을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 마케팅은 필수다. 마케팅의 핵심인 광고의 크리에이티브 전략에는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 브랜드 이미지, 포지셔닝 등이 있다. 어떤 전략을 선택하든 전달 방법이 관건인데, 스토리텔링은 어떤 선택에도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보통 기업이라면 광고가 될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야 하지만, 명품이라면 소비자가 사용한 경험과 역사만으로도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된다. 유행의 변화에서도 빛을 발해 대를 이어 사용하는 명품이라면 보다 풍성한 스토리를 빚을 수 있을 것이다.
루이비통 트렁크와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물 위로 떠오른 트렁크를 잡고 생존했으며, 70년 후 건져낸 트렁크 속 내용물이 온전했다는 이야기다. 사건과 시간이 맞물려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된 케이스다. 사실 확인은 어렵지만 오랜 시간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 명품이기에, 이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회자될 수 있었다.
오뚜기 함영준 회장의 장녀 뮤지컬 배우 함연지 씨는 어머니 대를 건너뛰어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50년 된 가방을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보석광 메리 왕비의 티아라는 손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4대째 전해져 유명세를 탔다. 이밖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셀럽들이 소장 명품을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소식은 매우 빈번하게 전해지고 있다.
대를 이어 전해진다는 것 자체가 내구성 등 제품의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는 의미로 USP 전략을 충족한다. 타이타닉호를 탈 수 있었던 상류층, 재벌가나 왕실에서 사용한 고급 브랜드 이미지 전략도 충족한다. 마지막으로 최상류층이 사용하는 최고 제품이라는 포지셔닝도 확실하다. 소비자의 오랜 시간이 스토리텔링을 만들었고, 모든 전략에 부합하는 완벽한 마케팅 툴이 된 셈이다.

에르메스에서 출시 예정
버섯 균사체 배양 가죽 ‘빅토리아 백’
‘ESG 최적화’ 명품 스토리
최근 지속가능경영의 화두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떠오르고 있다. 명품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선 소재 개선 등으로 친환경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미국의 친환경 스타트업 마이코웍스와 협업해 버섯 균사체로 만든 ‘빅토리아 백’을 출시할 예정이다. 아르마니는 재활용·유기농 소재의 친환경 콜렉션을, 파네라이는 재활용 티타늄으로 제작한 명품 시계를 선보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찌의 케링그룹은 원자재의 생산·유통 과정을 분석해 탄소 배출량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겠다고 밝혔다.
명품 업계가 ESG경영에 앞다퉈 나서는 이유는 분명하다. 환경보호와 동물복지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오명을 극복함과 동시에, 앞으로도 브랜드의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인류가 배출하는 전체 탄소의 10%, 연간 120억 톤이 패션산업에서 나온다고 한다. 생산된 의류의 75%가 소각이나 매립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최신 유행을 반영하는 ‘패스트 패션’의 영향이 크다. 대를 이어 사용하는 명품은 오히려 탄소배출량을 낮추는 효과까지 있다. 다만 일부 브랜드가 희소성 유지와 감세를 위해 판매되지 않은 재고품을 소각하는 경우는 지양돼야 할 것이다.
소비자로부터 비난받는다면 명품이라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러나 대를 이어 사용하는 우수한 제품을 만들고, 명품 브랜드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브랜드라면 그들의 시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시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명품
“트렌드에서 클래식으로”

샤넬 ‘미니 플랩백’
특징
심플하면서도 베이직한 디자인과 컬러
포인트
– 대를 이어 사용하는 명품
– 실용성, 내구성 등 뛰어난 품질
최근 MZ세대가 레트로나 뉴트로에 열광하도록한 원조 클래식 명품 제품이 있다. 명품 백 가운데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샤넬의 ‘뉴미니’ 구찌의 ‘클래식백’ 로에베의 ‘캔버스백’ 루이비통의 ‘빈티지백’ 등이다.
심플한 디자인과 무난한 컬러는 유행을 타지 않아 오랫동안 사용하거나 세대 구분 없이 사용해도 문제없다. 처음 명품 구입을 생각하는 경우에도 탁월한 선택이다. 특히 샤넬의 뉴미니는 오픈런의 주요 타겟이 되기도 한다.
“Birth Or Change”

빈티지 백 아티스트 류은영씨의 작품
특징
명품 AS와 커스터마이징으로 가치 제고
포인트
– 마치 새것처럼 환생
– 나만의 명품 탄생
아무리 명품이라도 시간의 흔적을 완벽히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염되고 마모되고, 때로는 복구하기 힘든 손상을 입기도 한다. 이럴 땐 브랜드별 공식 AS센터를 방문하거나 방송에 소개돼 검증된 명품 AS의 달인을 찾아가면 해결된다. 닳아버린 가죽을 복원하고, 색상을 살리는 것은 물론, 같은 부품으로 아예 새로 만들거나 교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듯 수선 후 제품은 완전히 새것처럼 보일 정도다.
모두가 사용하는 제품 대신 나만의 제품을 원한다면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하다. 일부 브랜드는 자체적으로 커스텀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명품 수선업체나 리폼업체에서 색상이나 형태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오래된 명품이라면 커스터마이징으로 나만의 명품을 만드는 도전도 나쁘지 않다.
“시간은 나의 편”

루이비통 ‘클래식 여행용 트렁크’
특징
시간이 만든 명품
포인트
– 명품을 만드는 것은 누적된 신뢰와 시간
– 낭중지추, 우수함은 결국 드러난다.
마구 용품과 안장을 만들던 에르메스,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던 루이비통 등 명품의 시작은 현재의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장인의 손길로 탄생한 고품질의 제품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며 신뢰를 쌓았다. 장인의 손길은 생산의 한계가 있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오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권위를 갖게 된다.
1913년에 설립된 프라다는 상류층과 유럽 왕가에서 명망을 얻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많은 부침을 겪었지만 결국 품질의 우수성과 미우치아 프라다가 추구한 변화를 통해 명성을 얻게 됐다.
Brand news
페르노리카
<시간의 느림 속으로 들어가다>
체험존 운영

페르노리카 코리아는 시간의 느림에 대한 미학에 위스키 테이스팅을 접목한 브랜드 체험존 발렌타인의 <시간의 느림 속으로 들어가다(Time Slowing Experience)>를 11월 11일부터 5일간 운영한다. 행사는 7개의 존에서 오감을 활용해 신비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설계 됐다. 체험 후에는 ‘타임 웰 스펜트(Time Well Spent) 바’에서 발렌타인의 다양한 라인업을 만나볼 수 있다.
몽블랑
재생 나일론 소재, ‘블루 스피릿 컬렉션’

문의 1670-4810
홈페이지
몽블랑이 재생 나일론 소재 에코닐(ECONYL®)을 사용한 환경 친화적 레더 컬렉션 블루 스피릿(Blue Sprit) 컬렉션을 선보인다. 그물, 카펫, 천 조각 등을 재생해 만든 에코닐은 재생 및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이다. 컬렉션에 포함된 가죽 또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은 태닝 공정으로 제작된 탄소 중립 가죽(CO2 neutral leather)을 사용했다.
라이카
<포트레잇과 포트레잇의 사이> 展

문의 02-32770257
장소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100년 전통의 독일 명품 라이카 카메라가 라이카 스토어 ‘더 현대 서울’과 ‘신세계 본점’에서 사진전 <포트레잇과 포트레잇의 사이>를 진행한다. 전시는 여성 포토그래퍼 사이이다 작가가 라이카 카메라를 사용해 국내외에서 마주한 풍경과 일상을 담아낸 22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10월 31일까지 운영하는 전시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글 현윤식 기자
사진 각 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