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거듭하며 성장해온 미술품 시장. 매력적이지만 초보자 입장에서는 섣불리 다가서기 어렵다. 작품을 고르는 것부터 구매와 시장에 대한 이해까지 알아야 할 것 투성이다. 미술품 시장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전문 큐레이터가 똑똑한 아트컬렉터가 되기 위한 ‘A to Z’를 소개한다. 첫 번째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을지 알아본다.
Art Bank ㅣ 아트투자
[똑똑한 아트컬렉션]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여파로 매년 열리던 미술 행사도 2월 프리즈아트페어(frieze, LA)를 마지막으로 모두 취소됐다. 경매사들도 메이저 경매를 오프라인 대신 화상으로 시도했는데, 이 중 처음으로 열린 소더비(Sotheby’s) 7월 화상 경매에서는 4시간 40분 동안 마치 전 지점에서 날아오는 호가를 지휘 연주하듯 진행자가 경매를 이끌며 4,371억원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는 코로나 시대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은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올해 초부터 이미 경매사, 갤러리, 아트페어들은 온라인 뷰잉룸(viewing room), 가상전시 투어를 개설하여 작품을 판매 중이다. 소더비는 2020년 3월부터 5월 초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에 온라인 경매를 40차례 열었고, 그 결과 약 857억원어치 경매품을 판매하여 기간 대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성과는 밀레니얼 세대(23~38세)의 미술품 구매증가와 더불어 가격 회복력이 큰 미술품이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코로나 시대에도 미술시장은 안정적이며, 밀레니얼 세대의 본격적인 소비가 시작된 상태이다. 이런 때라면 한 번쯤은 나도 미술품을 사볼까 하는 생각이 생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을까?

2020년7월 소더비(Sotheby’s) 화상경매 모습
출처: sothebys.com
Step1. 시야를 넓게 가져라
미술시장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유럽, 미국, 아시아, 중동, 심지어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대륙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두루두루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지금 내 연령대에만 맞는 작가만 보지 말자. 20~30대가 좋아하는 카우스(KAWS)와 같은 스트리트 작가(Street Artist)나, 아트토이(Art Toy)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관심을 접어두지 말자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20대라고 해서 이우환(b.1936~), 김환기(1913~1974)와 같은 작가를 조사대상에서 제외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단순히 넓은 시야를 갖고 작가 정보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작가들의 관심사, 표현방식, 그리고 경매사와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어떤 경매와 전시가 열리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카우스(KAWS),
2019년 3월 소더비 홍콩 경매 Preview

나라 요시토모(Nara Yoshitomo)의 굿즈,
2019년 3월 소더비 홍콩 경매 Preview

이우환 작품,
2018년 상하이 파워롱 뮤지엄(powerlong)에서 개최된 단색화 전시에서

김환기 작품,
2018년 상하이 파워롱 뮤지엄(powerlong)에서 개최된 단색화 전시에서
Step2. 관심 작가가 생겼다면 깊게 파라
관심 작가를 리스트업하고 해당 작가에 대한 정보수집을 풍부하게 해 놓아야 한다.
작품엔 작가의 삶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으므로 작가의 이력을 꼼꼼히 살핀다면 제작 연도별 화풍 변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호시탐탐(虎視耽耽)하다 보면 언젠간 내가 찾던 작품을 구매할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모아둔 작품 정보력은 구매 결정시간을 줄이고 판단력을 높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프랑스 작가 장 필립 델롬(jean philippe delhomme)의 작품
피오니와 마네

미국작가 캐서린 버나드(Katherine Bernhardt) 작품
빅 옐로우 아이
Step3. 나의 원칙을 만들어가라
미술시장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작품마다 다 각자의 주인이 있다’라는 것이다. 귀신같이 딱 맞는 주인을 마치 작품이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사실 이 신기한 매칭 법칙은 작품을 파는 사람들, 갤러리스트(gallerist)들의 보이지 않는 ‘주인 찾아주기 노력’ 때문이다. 이들은 미술품을 파는 상인이 맞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파는 미술품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내 아끼는 보물 같은 작품을 팔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다.
실제로도 해당 그림과 잘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Rule은 없어지거나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맞지 않는 구매자가 나타날 때는 모든 절차는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워지는 것을 자주 봤다. 즉, “원칙이 없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No rule is my rule.)”라는 오래도록 미술시장에 남아있는 문구처럼 , 미술품 거래에 있어 ‘거래 원칙’은 엄격한 듯 보이나 상대에 따라 굉장히 탄력적으로 적용된다. 판매자는 작품이 좋은 소장자에게 가서 오랜 시간 지켜지길 바라기 때문에 구매자의 컬렉션 이력과 성품을 경제력보다 예민하게 살펴본다.
그러니 작품을 구매할 때는 정말 작품을 사랑하고, 소장함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보자. 고스란히 이 마음은 판매자에게 전달되어 기대하지 않았던 ‘최고의 작품(best piece)’을 제안 받게 될 것이다.
Step4. 본질을 기억하라
미술품을 투자 목적으로 구매할 생각은 처음부터 버리자.
미술품이 상속, 투자 등으로 활용하기 좋다고 누군가 말하더라도 작품구매의 본질은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한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물론 미술로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좋아하는 작품을 공부하고 차근차근 소장하다 보니 기대 이상으로 작품 값이 올라 돈을 번 경우를 종종 봤다. 하지만 투자를 위해 시장 흐름을 예측하고 사고팔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얻는 수입은 사실상 크지 않다. 매번 시장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매매하는 사이에 발생하는 거래수수료와 운송비 등의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Step5. 미술을 사랑하라
미술품은 ‘나’라는 사람의 감정이 반영된 선택을 해야 후회가 없다. 그래서 의사결정도 철저히 내 감정과 상황에 따라야 한다. 화학 용액 안에 잠긴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상어를 예술로 공감하지 못한 채, 투자용이라고 무작정 사서 집에 들여놓을 순 없지 않은가.
“미술품을 구매하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공부하세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필자 역시 작품에 빠져 있지 않으면 공부 자체가 되질 않는다. 내 마음에 들고, 그래서 작가와 작품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단계가 선행되어야 관련 지식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작품을 선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구매 타이밍에 대한 감도 발동한다.
예를 들어 작가의 생애를 잘 공부했다면,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작품 중 그물(nets)과 호박을 그린 작품이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쿠사마가 60년대 뉴욕으로 건너가 가장 힘든 시기에 그렸던 환각의 엉킴이 그물이고, 그 시기를 이겨내게 해준 마음의 안식처는 호박이었다. 작가의 에너지와 삶의 허물이 곧 작품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물’과 ‘호박’이라는 소재가 담긴 작품에 모두가 깊이 공감하고, 소장하고 싶어 하므로 비싼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1991년 상어 작품(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출처: damienhirst.com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Lot. 1144)
작품명: INTERMINABLE NET #4(1959년)
사이즈: 143.5×108.6 cm
경매: 소더비 2019년 4월 홍콩
낙찰가: 7,959,583 USD (약 한화 94억원)
출처: sothebys.com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Lot. 1138)
작품명: PUMPKIN (2010년)
사이즈: 130×162.5cm
경매: 소더비 2019년 4월 홍콩
낙찰가: 6,943,105 USD (한화 약 82억원)
출처: sothebys.com
위의 말들을 마음에 두기로 했다면, 이젠 미술품을 일정한 소비목록에 둬보자. 투자를 가장 나중에 고려하는 소비가 된다면, 행운처럼 좋은 작품이 알아서 내게 찾아와 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나를 위해 야근하는 직원’의 역할을 톡톡히 해 줄 것이다. 더불어 아름다움과 지적 안목을 길러주고 사회적 위치도 만들어 줄 것이다.
미술품 구매는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컬렉터’가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좋은 그림은 좋은 사람에게 간다.
그러니 그림을 지켜주고 아껴줄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 보자. 모든 작품엔 다 주인이 있다.
글 이슬기 큐레이터
소더비(Sotheby’s Art Institute of Art, London)에서 아트비즈니스(MA)를 공부하고, 선화예술문화재단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였다. 2009년~2018년까지 문체부산하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해외미술시장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였고, 현재는 문화체육관광부 미술시장부문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