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읽으려면 유행어를 읽어라
녹두묵과 야채, 고기 등이 고루 섞인 ‘탕평채’라는 음식이 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평함’을 뜻하는 ‘탕평(蕩平)’을 반영한 음식이다. ‘탕평’은 조선시대 등장한 말로, 당쟁에 시달리던 영조가 당파를 초월하여 고루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펼친 것에서 유래했다. 등장과 함께 이 말은 조선사회를 뒤흔들었다. 저잣거리의 시시비비에 흔히 이 말이 쓰였으며, 탕평채를 비롯한 탕평갓, 탕평옷, 심지어는 탕평부채라는 것도 생겨났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것을 모두 ‘탕평’이라 불렀던 것이다.
유행어는 시대를 반영한 지금의 우리말이다. 여럿의 공감을 얻은 유행어는 힘이 실리고 생명이 들어선다. 최근 새로운 신조어들이 유행하는 것은 과거의 ‘탕평’과 같다. 다만, 과거보다 콘텐트의 생산과 소비가 빨라지고, 말의 쓰임조차 잠깐 한눈을 팔면 유행이 금세 지나고 만다. 2020년 10월 현재, ‘방가방가’ ‘뭥미’ ‘오나전’ ‘안습’ 같은 과거의 유행어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쓰는 순간 ‘아재’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국어파괴 같은데, 꼭 알아야 해?”라는 질문에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아재 취급당하지 않으려고’ 또는 ‘시대와 사회가 담긴 유행어를 통해 요즘 세대를 이해하려고’ 등 시쳇말을 알아둬야 할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내가 사는 세상을 가장 빨리 읽고, 공감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말들과 친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