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
‘K-컬처’ 혹은 ‘한류’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엔터테인먼트가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의 하나로 떠올랐고, 해외 팬들의 열띤 호응에 애국심마저 솟아올랐다. 팬들의 변화도 이어져 스타의 이름으로 선행을 하는 등 미담이 끊이지 않는다.
기자가 한때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다닐 때 일이다. 당시 최고의 가수나 영화배우들이 자주 회사를 찾아왔는데, 그럴 때마다 일부 젊은 직원들이 사인을 받으러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본 임원들은 혀를 끌끌 차며 가벼운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프라노 신영옥 씨가 음반 판매 기념식 참석차 회사를 찾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임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종이와 펜을 들고 뛰어나갔다. 젊은 직원들 못지 않은 열정적인 팬심은 임원들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왜 사람들은 스타의 팬이 되고 팬덤 현상이 나타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스타의 외모나 실력에서 오는 매력과 호감이 팬심의 시작일 것이다. 매력적인 목소리의 가수를 ‘고막남(여)친’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노라면 마치 연인이 나만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동일시’, ‘대리만족’, ‘소속감’ 등으로 설명하곤 한다. 즉, 특정 스타와 나를 동일시하여 대리만족을 느끼고, 같은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팬덤 활동 속에서 소속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동일시와 대리만족은 최근 SNS에서 폭넓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유튜브의 ‘먹방’을 보며 칼로리 높고 맛난 음식을 마음껏 먹는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천국에도 음악은 흐른다인간의 기본적 욕구 가운데 하나인 ‘소속감’은 팬덤 활동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 요소다. 실제로 엔터테인먼트사들은 공동 프로젝트와 팬미팅 등 소속감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친다. 소속감이 충족된 팬덤이 긍정적 바이럴 마케팅과 순위 경쟁, 매출 증대에 직접적으로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소속감은 심리학과 교육학에서 폭넓게 인용되는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서 3단계 욕구이기도 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다섯 가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생리적 욕구·안전해지려는 욕구·사랑과 소속 욕구·존경 욕구·자아실현 욕구를 차례대로 만족하려 한다는 것이다. 욕구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만족감도 더 높아지는데, 상대적으로 높은 단계 욕구인 소속감을 충족시키는 팬덤 활동이라면 만족도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6월에 열린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 맞이 ‘BTS 페스타’ 현장
팬덤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은 어디일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팬이 가장 많은 음악산업이다. 올해 6월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을 맞아 서울 곳곳에서 열린 ‘BTS 페스타’에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BTS 팬덤인 ‘아미(ARMY)’가 참여했다.
6월 12일부터 25일까지 서울의 명소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세종문화회관, 세빛섬, 남산서울타워, 서울시청, 반포대교, 양화대교, 영동대교, 월드컵대교 등이 BTS를 상징하는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특히 17일에는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대규모 불꽃놀이를 비롯한 축제가 열렸다. 경찰과 주최 측은 이날 축제에 외국인 12만명을 포함해 약 40만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시까지 적극적 후원에 나선 것을 보면, 팬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확인할 수 있다.
영화나 방송 등에도 팬이 있지만, 음악(가)에 유독 대규모 팬덤이 발달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첫째, 스타와 팬이 직접 만나는 대형 콘서트의 영향이다. 배우나 코미디언도 VIP 시사회나 공개방송을 통해 만날 수 있지만, 소수 인원만 참석할 수 있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반면 콘서트는 전국투어, 월드투어 등으로 가수들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다수의 팬을 직접 만나는 일이 보편적이다.
둘째, 3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매력을 어필할 수 있어서다. 영화는 2시간 내외의 러닝타임, 드라마나 방송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수의 팬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방송이나 뮤직비디오를 3분만 시청하면 충분하다. 유튜브·틱톡 등 ‘숏폼 콘텐츠(짧은 동영상)’가 대세인 현재, 음악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음악의 태생적 매력 때문이다. 예부터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노래만한 게 없다. 팬덤 활동이 왕성한 10대가 가장 즐겨 접하는 것도 음악이다. 여기에 매력적인 춤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한 영화기자는 “천국에서 영화를 보여줄 것 같지는 않은데, 음악은 항상 흘러나올 것 같다.”라는 말로 음악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일상적인가를 얘기한다.

JTBC 드라마 <킹더랜드>의 한 장면
가수들은 대규모 팬덤을 바탕으로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음악적 재능을 바탕으로 뮤지컬에 진출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배우로 전향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최근 화제의 드라마 <킹더랜드>의 남녀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공교롭게도 ‘2PM’, ‘소녀시대’ 출신의 가수들다. 두 사람은 가수로 시작했지만 빼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배우로서의 입지도 탄탄히 다지고 있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으로 다시 전성기를 맞은 엄정화는 톱가수로 성공했지만, 배우로 먼저 데뷔한 특이한 경우다. 이 외에도 황정음, 수지, 아이유 등 가수와 배우 양쪽 분야 모두에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스타는 많다. 이들은 모두 가수 시절 형성된 팬덤을 바탕으로 가수 이외의 다른 분야에 도전해 성공했고, 앞으로도 이런 비슷한 경우는 더 늘어날 것이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한 장면
음악 업계에서는 팬덤을 어떻게 생각할까? BTS의 소속사 하이브(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보고서를 통해 팬덤 경제의 총 시장 규모를 7조9천억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음악산업의 소비자는 팬덤 활동 정도에 따라 크게 ‘코어 팬덤(Core Fandom)’·‘라이트 팬덤(Light Fandom)’·‘일반 소비자’로 분류한다.
소비자의 수는 일반 소비자가 라이트 팬이나 코어 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지만 1인당 평균 매출은 약 2만원에 그친다. 코어 팬은 가장 적지만 1인당 평균 매출이 약 14만원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일반 소비자가 음반 1장을 살 때, 코어 팬은 평균 7~11장을 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코어 팬의 씀씀이는 들여다볼수록 놀라운데, 팬미팅 참석과 음반 판매순위를 올리기 위해 수백 장의 음반을 구매하기도 한다. ‘스트리밍 총공격(스밍)’도 신곡의 순위를 올리기 위한 필수 활동이다. 스타의 생일에는 팬들이 사비를 모아 ‘생일 카페’를 열고, 뉴욕 타임스퀘어 등 국내 및 전 세계 랜드마크 전광판 광고나 비행기와 기차에 래핑 광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팬덤이 기부 등 사회적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쳐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경제력이 있는 30~40대 팬들이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SM C&C 틸리언프로에서 팬덤 기부자 518명을 대상으로 리서치한 결과 ‘건강한 기부 문화 확산’이 참여 이유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외에도 ‘스타의 기부 활동에 영향을 받아 동참’이나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하면서 얻는 뿌듯함’, ‘스타의 선한 이미지 형성을 위해’을 위해서도 많은 선택을 받았다. 즉 팬들은 스타의 이름으로 마음 편히 기부하며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낀다는 결과다.
음반 구매부터 기부 활동까지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팬덤활동을 통해 얻는 것은 결국 소속감과 만족감을 넘어서는 성취감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1위를 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 데 대한 대리만족이 성취감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과거 ‘오빠부대’의 부정적 측면이 최근에는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생팬’이나 팬덤끼리의 대립은 현재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위상 변화, 팬 문화의 성숙 등 긍정적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팬덤 활동이 개인적 취향이자 여가활동이라고 존중해주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팬덤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청소년과 청년의 문화였던 팬덤이 다른 세대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트로트 열풍과 함께 중장년의 팬덤 활동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젊고 매력적인 트로트 가수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그들로부터 열정을 되살린 중장년의 팬덤 활동은 스타와 팬 모두에게 긍정적인 부분이 크다.
1. BTS 뷔의 글로벌 팬베이스 ‘뷔유니온’
● UN 환경계획과 협력하는 ‘지구의 날 네트워크’에 태형(뷔의 본명)의 이름으로 기부
● UN의 코로나19 연대 대응 기금재단 기부활동
● 한국 ‘뷔인사이드’ : 코로나19 당시 대구 의료진 도시락 기부
● 중국 팬덤 : 안전한 통학로 마련 위한 산시성 도로·다리 건설 프로젝트
2. 아이유 ‘아이유애나’
● 매년 특별한 기념일마다 자신의 이름과 팬클럽 이름을 합친 ‘아이유애나’의 이름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꾸준한 나눔 실천
3. 임영웅 팬덤 ‘영웅나라’
● 사랑의열매에 물품 기부
● 2020년 장학금 후원 등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기부활동 실천

가수 임영웅의 음악 세계를 분석한 최초의 책으로 임영웅 신드롬 구축의 배경과 내용을 알 수 있다. 성악을 바탕으로 트로트와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임영웅의 매력과 음악적 특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임영웅의 노래로 아픈 마음이 치유되었다’라고 이야기하는 팬들의 열정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글 _ 현윤식 기자
사진 및 자료 _ JT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