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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노후 인터뷰

소의 걸음으로,
술의 비책을 찾다
김희철 대표

2026.08.31

40년 가까이 은행원으로 살아온 사람이 정년을 몇 해 앞두고 조용히 다른 시간표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입 행원으로 출발해 부행장을 끝으로 30여 년의 금융 인생을 마무리한 김희철 대표.

은행 문을 나선 뒤에는 대학 강단과 사회적 금융 현장을 종횡무진하며 ‘사회적 일용 잡부’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오래 미뤄 두었던 개인적인 꿈을 향해 양평의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그는 자연 농법으로 우리밀을 키우고, 그 밀로 술을 빚는 양조인입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이기도 하고, 금융과 행복의 접점을 고민하는 연구가이기도 합니다. ‘소의 걸음으로 천천히 술의 비책을 찾아간다’는 뜻을 담아 지은 양조장 이름, 우보주책(牛步酒策)처럼 그는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도 않습니다. 그에게 은퇴란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문장의 시작이었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희철 대표

A. 자연 농법과 전통주 문화를 찾아가는 농부 양조사이자, 음악으로 위안을 전하는 거리의 악사, 금융과 행복을 연결하고 싶은 금융 연구가. 이것이 제가 요즘 추구하는 삶의 방향입니다. 지금은 농부이자 전통주 양조장 우보주책을 운영하고, 오케스트라 테너 색소폰 연주자로 공연과 재능기부 활동을 이어 가며, 오랫동안 해 온 사회적 금융 활동의 일부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Q. 오랜 은행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양조인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희철 대표

A. 전통주와의 인연은 은행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재직 중 1988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파견 근무를 하며 국제 행사에서 문화, 특히 음식과 술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습니다.

원래 술을 좋아해 즐겨 마셨지만, 그 기원과 역사, 문화적 가치는 늘 마음속 숙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4년 지인들과 함께 우리술 문화원 향음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술 문화를 공부했고, 전통주 수업을 들으며 술을 직접 빚어 보았습니다. 코로나 이후 여러 인연이 겹치면서 마침내 우보주책의 문을 열었습니다.

Q. ‘우보주책(牛步酒策)’이라는 독특한 양조장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A. 친구들은 ‘어리석은 놈이 주책맞기까지 하다’는 뜻이라며 놀리는데, 그것도 나름 일리는 있습니다.

정식으로는 한자 그대로 소의 걸음처럼 천천히 술의 비책을 찾아간다는 뜻입니다. 인생 3막에서는 서두르지 않고 진정성을 가지고 좋은 술과 좋은 술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목표를 담았습니다. 우보주책의 철학이 마음에 든다며 한 캘리그래피 작가가 작품을 선물해 주셨는데,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술을 마시며 좋은 마음을 나누는 것, 우보주책이 꾸는 꿈입니다.’

Q. 다른 지역특산주 양조장들과 달리 ‘밀’을 대표 재료로 특화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희철 대표

A. 2023년 양평군이 식량 안보와 관광 산업을 위해 밀 산업을 육성하며 제1회 양평 우리밀 축제를 열었습니다. 뜻깊은 행사라고 생각해 오케스트라 30여 명과 함께 재능기부 공연을 했는데, 정작 행사장에서 판매하는 밀막걸리가 수입산 밀가루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밀 막걸리와 우리밀 증류주를 개발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우리밀 통밀로 막걸리를 빚는 곳은 저를 포함해 두 곳뿐이고, 우리밀 소주를 만드는 곳도 마찬가지로 두 곳뿐입니다. 우리밀 통밀 막걸리는 제2회 축제에서 처음 선보였고, 이를 전통 방식으로 증류한 것이 양평밀소주53입니다. 이 밖에도 양평참드림 쌀 막걸리, 양평 청운의 흑미 막걸리, 두물머리의 연 막걸리 등 지역 특산물을 원료로 한 술들을 계속 개발하고 있습니다.

Q. 가족이 함께 만들어 가는 우보주책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평생 술을 마셔 온 덕에 빚는 일 자체는 낯설지 않았지만, 상업화는 완전히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식품영양학 박사이자 지금도 현업에서 일하는 아내가 많은 조언을 해 주고, 미생물학을 전공한 조카도 큰 도움을 줍니다. 외교관 남편을 따라 주로 해외에서 지내는 딸은 제가 양조장을 시작한 뒤 와인과 증류주 관련 자격증까지 땄고, 현지 쌀과 한국 전통 누룩으로 막걸리를 직접 빚어 행사에 쓰기도 합니다.

김희철 대표
Q. 정년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예전에 한국FP협회 소속으로 전국을 다니며 ‘행복한 노후를 준비하는 비결’을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늙지 않으면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은퇴하지 않으면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생각의 꼰대가 되지 말자는 뜻입니다. 취미든 직업이든 계속 즐겁게 사회 활동을 이어 가라는 말씀으로 갈음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김희철 대표

A. 제 명함에도 적어 둔 우보주책의 목표는 ‘우리 술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첫째, 술을 만들어 파는 일보다 일상 속에서 우리 술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술을 수출하기보다 우리 술 문화를 수출하고 싶습니다.
둘째, 전통은 박제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 문헌에만 매달리지 말고 K-술의 문화적 가치를 지금 시대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 전달해야 합니다.

editor. 정애영(프리랜서 기자)

photo. 홍하얀(프리랜서 촬영기사)

※ 본 콘텐츠는 한경매거진앤북에서 제공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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