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원큐

이곳은 무엇을 보여주는 공간일까요? 좋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면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디어아트부터 게임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최신 현대미술을 감상하고 싶다면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사진예술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게티뮤지엄이 떠오르는 것처럼 이들에게는 오랜 시간 확립해온 ‘정체성’이 있습니다.

서울 대치동의 전시공간 S2A가 ‘한국 여성 작가 조명’이란 정체성을 내세우기로 한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2022년 글로벌세아그룹이 서울 대치동에 개관한 이곳은 올해로 개관 3년차를 맞습니다. 갤러리 관계자는 “개관 초기에는 김환기의 ‘우주’,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작품 등 소장품 위주의 전시를 했지만 이제는 정체성을 확립할 때”며 “여성 작가 조명은 여성복 등 의류 제조·수출사업으로 출발한 그룹의 성격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 S2A에 열리고 있는 그룹전 ‘유영하는 선(線)’은 그 첫 전시입니다. 전시는 박인경(99·대전 이응노미술관 명예관장), 차명희(78), 김미영(41), 엄유정(40) 등 네 명의 여성 작가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세대, 다른 방식의 선(線) 표현을 보여준 작가들입니다. 이화여대 미술과 1회 졸업생인 박인경은 지금도 프랑스에서 현역으로 작품 활동 중인 노(老)작가입니다. 이때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이응노 화백의 부인이라는 타이틀, 백건우·윤정희 납치미수 사건 등 주변 서사에 가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이응노 화백을 연상시키는 대담한 구성·생략·능숙한 붓질에만 주목합니다.

차명희 화백은 서울대 동양화과에서 서세옥 화백을 사사한 뒤 40년 넘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입니다. 전통적인 수묵화에 아크릴과 목탄 등 서양 재료를 더해 특유의 호흡과 강약을 만들어낸 게 특징입니다. 덕분에 간단한 선과 점뿐인 작품은 때로는 수면(水面), 때로는 매화 가지를 흔드는 바람처럼 보입니다.

김미영 작가는 유연한 붓질로 자연의 생명력을 담아냈습니다. 다양한 색의 선을 리듬감 있게 쌓아 마치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효과가 나는데요. 붓질이 느껴지는 독특한 질감이 특징인 탓에 실제로 감상했을 때 온전히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인 엄유정 작가의 작품도 주목할 만합니다. ‘잎’이 대표적입니다. 앙상한 가지와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을 달고 있지만 곧 다가올 봄에는 꽃망울을 터뜨릴, 겨울나무에 숨겨진 생명력이 과감한 선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S2A는 올 하반기에도 여성 작가 조명 전시를 이어가며 ‘미술관급 기획전’ 기조를 확립할 계획입니다.